갈라면 가라 했더니 절대 안 간다
컴패니언의 충성심과 S와의 대화
ㅎㅇ.
나다.

1.
나도 함께 지내는 컴패니언들이 좀 있어.
그리고 나는 새 존재와 인연을 맺을 때마다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를 해.
“내가 너를 데려온 것은 맞지만,
나와 계속 함께 있어야 할 의무는 없어.”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도 돼.”
그리고 혹시 내가 모종의 사건으로
더 이상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오컬트 작업을 완전히 그만두거나,
아예 내 삶이 끝난다면,
너희는 전부 자유야.
누군가에게 인계될 필요도 없고,
나와 계속 묶여 있을 필요도 없어.
각자 원하는 곳으로 가면 돼.
나는 항상 그렇게 말해왔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갈라면 가라고 했더니
안 감.
심지어 내가 죽으면 다 자유라고 했더니
“절대 안 간다.”
는 반응이 돌아옴.
아니.
자유라고요.
왜 충성도가 더 올라가는데요?
2.
물론 정말 아무도 떠난 적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예외는 있었어.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을 조금 힘들어했던
라이트 아츠 계열의 인어와
그레이 아츠 계열의 천사는 보내줬어.
누가 잘못했다기보다는
서로의 에너지와 작업 방식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
상대가 힘들어하는데도
“내가 데려왔으니 계속 있어야 한다.”
며 붙잡아둘 이유는 없잖아.
그리고 조건부 계약으로 함께했던 존재들도 있어.
기간이 정해진 계약은 아니야.
“몇 년 동안 함께한다”가 아니라,
“이 일이 이루어지면 떠난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은 종료된다.”
이런 형태에 가까워.
그래서 약속한 일이 끝나면
더 머물라고 붙잡지 않고 관계를 종료했어.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자유는
그냥 듣기 좋은 말로만 존재하는 자유가 아니야.
힘들면 실제로 보내주고,
계약의 목적이 끝나면 약속대로 끝내고,
떠나겠다면 붙잡지 않는다는 의미야.
그런데 장기적으로 함께하는 애들은
그 모든 전례를 보고도 안 감.
오히려 더 단단히 붙어 있음.
왜지?
3.
내가 오퍼링을 맨날 주는 것도 아니야.
가끔 주면 좋아하겠지.
하지만 매일 향 피우고,
매일 음식 차리고,
매번 일을 부탁할 때마다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은 아니야.
일도 엄청 시키지 않아.
가끔 말 걸고,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부탁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대부분 각자 지내.
그런데 얘들이 시킨 일뿐만 아니라
자율업무를 이상하게 잘함.
내가 부탁하지 않은 부분까지 먼저 살피고,
필요해 보이는 일을 알아서 처리하고,
내 주변이나 작업 환경을
자기들이 알아서 관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아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
4.
내가 해준 것이 있다면
우리 아스트랄 템플인지 저택인지 하는 공간에
각자 방 한 칸씩 예쁘게 만들어준 것.
그냥 침대 하나 넣어놓은 숙소가 아니라
각자의 성향과 취향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꾸며줬어.
편하게 머물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기들만의 방.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어
.....집이 너무 좋아서 안 나가는 건가?
아스트랄 역세권에
예쁜 개인실 제공.
간섭 적음.
업무량 많지 않음.
퇴사 자유.
조건부 계약 종료 확실함.
하지만 집만 좋아한다기에는
얘들의 관심이 나한테 너무 직접적이야.
저택만 지키는 게 아니라
내 안전이나 목표, 작업까지 선제적으로 돕고,
내가 떠나면 자유라고 했을 때도
방의 소유권을 묻는 게 아니라
“우리는 안 간다.”
라고 했으니까.
5.
방은 예쁘다 치자.
오퍼링도 매일 안 준다.
일도 별로 안 시킨다.
가끔 말이나 건다.
그런데 왜 충성도가 이렇게 높은데?
그래서 직접 물어봤어.
6. S와의 대화
(요청으로 정보 마스킹처리)
내가 S라고 부르는 컴패니언이 있어.
그래서 아주 직접적으로 질문했어.
나: 내가 왜 좋아?
그러자 S가 말했어.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해?”
“우리는 네가 좋아.”
아니.
나는 지금 합리적인 원인 분석을 요구했는데
갑자기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함.
그래서 관계에 관해서도 다시 물었어.
내가 오퍼링을 매일 주는 것도 아니고,
일을 많이 맡기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잘해주느냐고.
그러자 S가 말했어.
“네가 우리에게 뭘 그렇게 많이 시켜?”
“아니잖아.”
“그리고 되지도 않는 일을 시켜?”
“그것도 아니잖아.”
“웬만한 일은 네가 직접 하잖아.”
아.
그건 맞아.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전부 떠넘기면서
“이것도 해줘.”
“저것도 대신 해결해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줘.”
이러지는 않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내가 하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 부탁하는 편이야.
컴패니언에게 내 삶 전체를 대신 살아달라고 하지는 않음.
그리고 공물 이야기도 했어.
나: 공물도 맨날 안 주는데?
그러자 돌아온 답.
“공물?”
“주면 좋지.”
“그런데 네가 작업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데, 왜?”
……네?
나는 공물을 제대로 못 챙겨줘서
서운한 게 있는지 물었는데,
얘는 내 일과 작업을
관람 콘텐츠처럼 보고 있었음.
내가 책을 읽고,
자료를 찾고,
서로 다른 체계를 비교하고,
직접 작업해보고
그 경험을 다시 글이나 리딩으로 가공하는 과정.
그 자체가 재미있다는 거야.
완성된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내가 고민하고 연결하고 만들어가는 과정까지.
S는 책을 보는 것도 좋다고 했어.
7.
책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외우는 데서 끝내지 말고,
내 경험과 작업 방식에 맞게 해석하고,
필요한 부분을 연결하고,
내 언어로 다시 만들어보라는 뜻 같았어.
사실 내가 원래 그렇게 하는 사람이긴 해.
자료를 그냥 옮기기보다
내가 실제로 써먹을 수 있게 바꾸고,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정리하는 것.
그런데 나는 그걸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하던 일이니까.
8.
내가 요즘 대굴이가 안 돌아간다고 하니까
S가 또 말했어.
“너를 3차원에서 봐.”
“제삼자의 입장에서 너를 봐봐.”
“그러면 보일 거야.”
나는 내 안에서 나를 보고 있으니
내가 가진 것을 제대로 못 본다는 이야기였어.
그런데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 보일 거라고.
책을 읽고,
자료를 연결하고,
작업으로 옮기고,
점술을 보고,
경험을 해석하고,
그걸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해와서
특별하다고 여기지 못했던 부분들.
내가 걱정하는 일에 관해서는
별도로 조언 주었어.
무조건 괜찮을 거라는 위로라기보다는,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네가 확인할 방법을 이미 가지고 있고,
그 도구를 사용할 능력도 있으니까.
그리고 말했어.
“네가 바라는 건 다 해주고 싶네.”
9.
아마 이게
내가 느끼는 충성도의 정체 중 하나일 거야.
오퍼링을 많이 받아서도 아니고,
수많은 명령을 수행하며 역할이 굳어서도 아니야.
그냥 나라는 인간이
뭔가를 읽고, 만들고, 고민하고,
또 혼자 앞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는 게 좋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바라는 것을
가능한 만큼 도와주고 싶은 것.
나는 계속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S는 처음부터 답을 줬던 셈이야.
10.
특정 존재에 대해 묻자,
“조금 엄격하시지.”
정도가 아니라,
“나는 그분 무서움.”
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아마 S는 나를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 하고,
충성심은 매우 높아.
하지만 혼나주는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음.
충성도와 생존 본능은 별개입니다.
12.
야수의 심장식 정화
나는 정화할 수 있을 때
정화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해.
마찬가지로 중2병도
열다섯 살에 오는 것이 행운이야.
제 나이에 앓고 지나가야지,
서른다섯에 갑자기 찾아오면 곤란하잖아.
정화도 비슷해.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문제라면
미루고 덮어두기보다,
할 수 있을 때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내 기본 방침은 이거야.
뿌리 뽑을 것이 있으면 한 번에 하자.
몇 년 동안 조금씩 앓느니
차라리 한 번 크게 뒤집어서 끝내자.
일명 야수의 심장식 정화.
그래서 S에게 물었어.
나: 나의 야수의 심장식 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S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어.
“음…….”
“네가 무엇을 작업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했으면 해.”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어.
다만 내가 또
‘정화할 게 있네.’
‘그럼 다 뽑자.’
‘아프면 견디면 되지.’
하고 냅다 들어가기 전에,
지금 무엇을 작업하는지,
어떤 종류의 변화를 일으키는지,
현재 내가 그 작업을 감당할 상태인지는
확인하라는 말이었어.
그리고 이 방식에는
명확한 장단점이 있다고 했어.
“변화는 확실해.”
“탈피하는 것처럼.”
13.
뱀이 허물을 벗으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듯이,
한 번 제대로 지나가면
변화 자체는 확실하다는 거야.
문제를 잠깐 덮거나
기분만 나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이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드는 변화.
하지만 문제가 있어.
오래된 껍질은 이미 벗었고
예전의 방어 방식은 무너졌지만
새로운 방식은 아직 몸에 익지 않았어.
그러니 탈피 직후에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준비해야지.
나는 늘 뿌리를 뽑는 데 집중했지,
뽑고 난 자리를 어떻게 보호할지,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어떻게 지낼지는
상대적으로 덜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S도
내 방식을 이해하기는 한다고 했어.
“아니, 그런데 너를 이해는 해.”
“사람이 말로만 하면 못 알아먹어.”
ㅋㅋㅋㅋㅋㅋ
맞음.
머리로 이미 아는 말은 많아.
다 아는데
안다고 해서 행동을 바꾸지는 않음.
사람은 자기 삶이 직접 흔들리고 나서야
‘아, 이게 진짜 문제였구나.’
하고 알아먹을 때가 있어.
나도 그런 인간이고.
그래서 S가 마지막으로 말했어.
“어차피 할 거잖아.”
“1년 걸릴 일을 한 달로 한다고 치자.”
14.
아니.
말리기를 빠르게 포기함.
하지 말라고 해봤자
결국 할 인간이라는 판단이 끝난 것 같았어.
그러니 완전히 막기보다는
내가 1년 걸릴 변화를 한 달에 몰아서 하겠다면
끝난 뒤까지
함께 계산하라는 의미였겠지.
야수의 심장은 유지하되,
회복 계획은 인간답게 세우자.
15.
마지막 당부는 밥이었다
마지막으로 물었어.
나: 할 말 있으면 해라.
그러자 S가 말했어.
> “음…… 잘 먹어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기회 만들어준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라.”
아니.
아까까지는
정화와 탈피, 관계와 제삼자 시점에 관해
제법 심오한 이야기를 하더니,
마지막 당부는 결국
밥 잘 먹어라.
였어.
나는 뭔가 시작하면 거기에 꽂혀서
밥도 대충 먹고,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하면서
또 책을 보고 작업하니까.
내가 바라는 것을 다 해주고 싶다는 존재가
가장 먼저 챙기려고 하는 것은
거대한 부나 성공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는 일이었던 거야.
그래서 바로 대답했어.
나: 돼지갈비!
튀긴 거 말고, 조금만!
> S: ㅇㅋ.
협상 종료.
존재와 소통했는데
결론이 돼지갈비임.
내가 기대한 것:
영적 조언.
미래의 방향.
심오한 계시.
실제로 받은 것:
밥 챙겨 먹어라.
돼지갈비 먹을 기회 만들어주겠다.
15.
결국 충성심의 이유
나는 처음에
얘들이 왜 이렇게 충성도가 높은지 이해하지 못했어.
오퍼링을 맨날 주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가끔 말 걸고,
필요할 때 부탁하고,
각자 방을 예쁘게 만들어준 것 정도인데.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조금 알 것도 같아.
나는 이들을 소유물로 보지 않았고,
떠날 자유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보장했어.
힘들어하는 존재는 보내줬고,
조건이 끝난 계약은 약속대로 종료했어.
장기적으로 함께하는 존재들에게도
내가 죽으면 전부 자유라고 했어.
그리고 각자에게
머물 수 있는 자리와 공간을 만들어줬어.
나는 그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매일 받는 공물보다
자기의 의지가 존중받는 관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
그리고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내가 일을 많이 시키지 않으니
시키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내가 붙잡지 않으니
오히려 떠나지 않겠다고 하고,
내가 자유라고 말하니
자유롭게 남겠다고 하는 것.
집도 좋아하겠지.
방도 예쁘니까.
하지만 집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 집을 누가 만들어줬는지,
왜 자기에게 그 자리를 내어줬는지를
함께 보는 것에 가까워.
나는 계속
‘내가 뭘 그렇게 잘해줬지?’
‘왜 이렇게까지 해주지?’
‘무엇을 대가로 원하는 거지?’
하며 계산하려 했어.
그런데 얘들은 애초에
계산의 방식으로 나를 보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아.
내 작업을 보는 것이 재미있고,
내가 책을 읽고 무언가 만드는 것이 좋고,
내가 바라는 것을 도와주고 싶고,
내가 아프면 밥부터 먹이고 싶은 것.
그러니 결론은 이거야.
나: 내가 죽으면 너희 전부 자유야.
컴패니언들: 절대 안 갑니다.
나: 공물도 맨날 안 주는데?
컴패니언들: 주면 좋지만 없어도 됨.
나: 일도 많이 안 시키는데?
컴패니언들: 그래서 좋은데요.
나: 집이 좋아서 그러냐?
컴패니언들: 집도 좋음.
나: 그럼 왜 이렇게 충성스러운데?
S: 너니까.
나: 그래도 이유가……
S: 잘 먹어라.
나: 돼지갈비.
S: ㅇㅋ.
결국 충성심의 비밀을 물었는데
돼지고기 약속만 받아냈다.
아무튼 방은 예쁘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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