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아 72악마의 ‘군단’은 진짜 병력 숫자인가?
게티아의 영들을 보다 보면 이름과 작위 뒤에 꼭 이상한 숫자가 붙는다.
바엘 ― 66개 군단.
아가레스 ― 31개 군단.
마르바스 ― 36개 군단.
파이몬 ― 200개 군단.
아스모데이 ― 72개 군단.
여기서 말하는 것이 바로 Legions, 군단이다.
그러면 당연히 궁금해진다.
“진짜 악마 병사가 몇십 개 군단씩 있다는 뜻인가?”
“왕이면 군단이 더 많나?”
“설마 이것도 전투력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원전은 실제로 이들을 ‘휘하에 여러 군단의 영들을 거느리는 존재’처럼 묘사하지만,
그 숫자를 현대 군대의 병력표처럼 정확하게 환산하기는 어렵다.
Legion은 원래 군사용어다
Legion은 원래 고대 로마군의 대규모 군사 단위를 뜻한다.
그런데 악마와 ‘Legion’이라는 단어의 연결 자체는 게티아보다 훨씬 오래됐다.
신약성서 《마가복음》 5장 9절에는 예수가 악령에게 이름을 묻자,
“내 이름은 군단(Legion)이다. 우리가 많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는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즉 기독교 문화권에서 ‘Legion’이라는 단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악령의 집단 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르네상스 악마학과 그리모어에서 악마의 휘하 세력을 ‘군단’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악마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왕국이나 군대로 상상하기에도 아주 편한 표현이다.

실제 게티아보다 앞선 자료에도 군단이 있다
이 표현은 《Ars Goetia》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도 아니다.
게티아의 중요한 선행 자료인 Johann Weyer의 16세기 《Pseudomonarchia Daemonum》에서도 이미 각 영이 몇 개의 군단을 지배하는지 적혀 있다.
예를 들어 Weyer의 바엘은 66개 군단, 아가레스는 31개 군단, 마르바스는 36개 군단을 다스린다고 기록된다.
즉, 왕 → 공작 → 후작 → 군단
같은 표현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들의 세계를 마치 인간 사회의 궁정과 군대처럼 정리한 것이다.
이건 당시 악마학 특유의 재미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설명하면서도 조직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이다.
왕이 있고, 공작이 있고, 통령이 있고, 기사도 있고, 그 밑에는 군단이 있다.
거의 지옥의 행정조직도다.

그러면 군단이 많으면 더 강한가?
이렇게 보면 군단 숫자가 곧 전투력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목록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예를 들어 King인 Purson은 22개 군단을 거느린다.
그런데 Earl이자 Prince인 Ipos는 36개 군단을 거느린다.
즉 높은 작위를 가진 영이라고 반드시 군단 숫자가 더 많은 것은 아니다.
파이몬처럼 200개 군단을 거느린다고 기록된 특이한 사례도 있지만,
전체 목록을 보면 작위 순위 = 군단 숫자 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을 “군단 60 = 전투력 60” 처럼 읽는 건 곤란하다.
그럼 1개 군단에 몇 명이 있는 걸까?
여기가 제일 애매하다.
로마군의 legion을 그대로 적용해서 “악마 군단 하나가 수천 명이니까 50개 군단이면 수십만 악마다!” 라고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
재미로 계산할 수는 있겠지만, 게티아 원전은 그런 식의 환산표를 제공하지 않는다.
‘Legion’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하지만, 영 하나가 몇 명인지, 각 군단의 규모가 동일한지, 그 군단이 실제 군사 조직인지 같은 내용은 설명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필사본과 계통에 따라 이름뿐 아니라 일부 군단 숫자 역시 차이가 난다. 현대의 게티아 목록에서도 판본에 따라 수치가 다른 사례가 확인된다.
따라서 군단 숫자를 정확한 인구통계처럼 읽는 것은 무리다.

중요한 건 숫자보다 ‘휘하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오히려 중요한 건 다른 부분일지도 모른다.
게티아의 주요 영들은 대부분 혼자 움직이는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휘하의 영들이 있고, 어떤 존재는 여러 계급의 영들을 거느리며,
어떤 존재는 등장할 때 다른 왕들과 수행원까지 데리고 온다.
예를 들어 Weyer의 Pruflas에 관한 설명에서는 휘하의 26개 군단 일부가 Thrones와 Angels의 계급이라고까지 기록한다.
즉 ‘군단’이라는 표현의 핵심은 단순한 병력 숫자보다, 이 영에게 종속되거나 지휘받는 다른 영들이 존재한다는 위계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지옥도 조직사회다
그래서 게티아의 군단을 볼 때는 정확히 몇 명인가?
보다 왜 이 존재에게 군단이라는 표현을 붙였는가? 를 보는 편이 더 재미있다.
게티아와 그 선행 악마학 문헌들은 악마 세계를 무질서한 괴물들의 집합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다. 지극히 행정적이며 조직도이다.
왕과 공작이 있고, 각자 영역과 Office가 있으며,
그 밑에 다시 수십 개의 군단이 존재한다.
천사들의 Choir와 Order가 있는 것처럼,
악마들의 세계에도 또 하나의 계층과 군대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Legions는 아마도 정확한 ‘악마 병력 통계’라기보다는,
각 영이 혼자가 아니라 하나의 세력과 위계를 거느리는 통치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언어 로 읽는 편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게티아는 악마 도감이면서 동시에,
묘하게도 지옥의 조직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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