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채팅방에서도 그렇고, 제 블로그에서도 그렇고 이집트의 세트(Set)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세트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일단 세트는 신화적으로도, 전승적으로도 단순히 ‘악신’이라고 정의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한 신입니다.
물론 굉장히…… 머시기한 분이시긴 합니다.
오시리스를 죽이고, 호루스와 왕권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이야기만 보면 악역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실제로 후대에는 세트가 혼돈과 폭력, 불모의 사막과 연결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트에게는 전혀 다른 얼굴도 있습니다.
세트는 라의 태양선을 지키며 매일 밤 아펩(Apep)과 싸우는 신이기도 합니다.
즉, 혼돈 그 자체라기보다는 혼돈과 맞서기 위해 혼돈의 힘을 사용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호루스와 대립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자이면서, 동시에 라의 적을 물리쳐 세계의 질서가 계속 유지되도록 만드는 자.

그래서 세트를 선신과 악신이라는 구도로 나누면 묘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남습니다.
제가 세트에게 흥미를 느낀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세트
신화 속 세트 이야기를 어느 정도 했으니, 이번에는 제가 실제 작업에서 느낀 세트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그리고 제 경험 속 세트는……
생각보다 굉장히 현실적이었습니다.

1.
나: 집이 없어요ㅜ
세트: 그래? 우리 집에서 잠깐 지내.
문제는 그 집이 붉은 사막과 모래폭풍이라는 점입니다.
세트가 사막, 폭풍, 혼란과 연결되는 신이라는 걸 생각하면 묘하게 말이 됩니다.
안락하고 포근한 보호라기보다는,
“일단 여기 있어. 죽지는 않게 해줄게.”
에 가까운 느낌.
2.
나: 정화하고 싶어요!
세트: 그래? 일단 뭐가 문제니?
나: ……
세트: 흠. 다 문제네.
제가 느낀 세트의 정화는 뭔가를 예쁘게 씻어내고 다듬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비유하자면,
모래바닥 위에 콘크리트를 아무리 부어봤자 소용없는데, 일단 철거부터 할까?
에 가까웠습니다.
문제가 있는 구조물을 보수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아예 뜯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쪽입니다.
그래서 세트의 작업은 때때로 굉장히 거칠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경험에서는
무작정 부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이미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것을 억지로 유지하지 않는 것.
그쪽에 가까웠습니다.
3.
나: 오래 뛰는 방법이 필요해요.
세트: 일단 운동부터 가라.
나: 영적인 방법 같은 건……
세트: 운동부터.
네.
이런 느낌입니다.
굉장히 거창한 신비주의적 해답을 기대하고 갔는데
기본적인 현실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합니다.
체력이 부족하면 운동을 하고,
기반이 흔들리면 기반부터 세우고,
무너진 구조 위에 뭔가를 계속 올리려고 하면 일단 뜯어냅니다.
제가 느낀 세트는
‘혼돈의 신’이라는 이름만 듣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직선적이었습니다.
부수기 위해 부수는 존재라기보다는,
필요 없는 것을 치우고,
버틸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그 다음에 다시 움직이게 하는 존재.
적어도 제게는 그런 세트였습니다.
https://voidtemperance.tistory.com/m/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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