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게티아의 72악마는 왜 1번부터 72번까지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을까?
게티아를 처음 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1번 바엘(Bael), 2번 아가레스(Agares), 9번 파이몬(Paimon), 32번 아스모데이(Asmoday), 68번 벨리알(Bel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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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숫자는 서열일까?
1번이 가장 강하고,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구조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게티아에는 64위가 아니라 총 72위의 영(Spirit)이 등장한다.
1. 솔로몬의 작은 (The lesser key of solomon) 열쇠와 Ars Goetia
우리가 흔히 「솔로몬의 작은 열쇠」라고 부르는 《Lemegeton Clavicula Salomonis》은 하나의 책이라기보다는
여러 마법 전승이 합쳐진 편찬물에 가깝다.
현재 알려진 형태는 대체로 17세기 무렵 정리되었으며, 그 안에는 더 오래된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자료들이 섞여 있다. 역사적 솔로몬 왕이 직접 저술한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성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Ars Goetia
72명의 영과 그들의 인장, 능력, 작위 등을 다룬다.
Theurgia-Goetia
방위와 공중의 영들을 다룬다.
Ars Paulina
시간과 황도에 관련된 천사 체계를 다룬다.
Ars Almadel
네 개의 고도 또는 영역에 속한 천사들을 다룬다.
Ars Notoria
지식, 기억, 학습과 관련된 기도와 신성 마법 체계를 다룬다.
그리고 그중 가장 유명해진 첫 번째 책이 우리가 72악마로 알고 있는 Ars Goetia다.
2. 그렇다면 게티아의 1번부터 72번까지는 서열인가?
No.
아니다.
가장 안전하게 보는 방법은 그냥 목록 번호, 즉 카탈로그 번호라고 보는 것이다.
이걸 확인하기 좋은 자료가 Johann Weyer의 《Pseudomonarchia Daemonum》이다.
게티아보다 앞선 이 목록에는 게티아와 상당수 같은 영들이 등장하는데, 문제는 순서가 다르다.
예를 들면, 마르바스는 Weyer의 목록에서는 3번이지만 게티아에서는 5번이다.
파이몬은 22번에서 게티아 9번으로 이동한다.
벨리알은 23번에서 무려 68번으로 이동한다.
스톨라스는 68번에서 게티아 36번이 된다.
즉, “파이몬이 9위니까 10위보다 강하다.” 같은 식으로 읽을 근거가 없다.
Joseph Peterson 역시 Weyer의 목록과 Goetia의 목록 사이에 왜 이런 순서 차이가 생겼는지 명확한 설명은 없다고 지적한다.
전승 과정에서 원본 계열의 페이지가 뒤섞였을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그러니까 게티아의 번호는 RPG 전투력 랭킹이 아니다.
1번은 1등이 아니라 그냥 첫 번째로 기록된 영이다.
3. 그런데 왜 하필 72명인가?
이 부분은 조금 재미있다.
Weyer의 《Pseudomonarchia Daemonum》에는 실제로 69명의 영만 실려 있다.
반면 후대의 Lemegeton에서는 목록이 72명으로 확장된다.
Peterson은 이것이 72라는 숫자의 신비주의적·수비학적 중요성 때문일 가능성을 지적한다.
특히 유대 신비주의 전통에서 잘 알려진 셈 하메포라쉬(Shem ha-Mephorash)의 72천사와 대비되는 형태로 72명의 게티아 영들이 구성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여기서도 주의해야 한다.
오늘날 볼 수 있는
> 1번 악마 ↔ 1번 천사
> 2번 악마 ↔ 2번 천사
같은 완전히 정교한 대칭 체계를 전부 고대 원전에서 그대로 내려온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후대의 카발라, 골든던, 크롤리 계열에서 여러 대응 체계가 계속 추가되고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4. 게티아의 작위 체계 : 왕, 공작, 후작… 게티아의 작위는 무엇인가?
게티아를 보면 영들에게 인간 귀족사회 같은 직함이 붙어 있다.
King : 왕
Duke : 공작
Prince / Prelate : 군주, 대공, 왕자
Marquis : 후작
President : 총재·통령
Earl / Count : 백작
Knight : 기사
그리고 여기서 또 흔한 오해가 생긴다.
왕 > 공작 > 후작 > 대통령 > 기사
그러니까 이게 악마들의 전투력 서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한 영이 두 개의 작위를 동시에 가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Vine은 King이면서 Earl이고,
Zagan은 King이면서 President다.
Gaap 역시 Prince이면서 President로 기록된다.
따라서 작위는 일방적인 정의나 전투력보다, 그 영이 어떤 계층으로 분류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의례적으로 다루어지는지를 표시하는 일종의 마법적 행정 분류에 더 가깝게 보는 편이 좋다.
재미있는 것은 작위마다 행성 대응이 있다는 것이다
게티아의 「Observations」에는 작위에 따라 인장을 어떤 금속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적혀 있다.
왕 이라면 금이고 행성으로는 태양이다.
공작은 구리 이며, 행성으로는 금성이다.
Prince. 왕자라면 주석이고 행성으로는 목성이다.
후작은 금속과 연결되며, 행성으로는 달이다.
통령은 수은이고, 행성으로는 수성이다.
기사는 금속으로는 납이고, 행성으로는 토성이다.
마지막으로 백작은 구리와 은이자 행성으로는 달 + 금성에 가깝다.
그래서 게티아에서 말하는 작위는 표면적으로 붙여둔 이름이 아니다.
작위에 따라 인장의 재료도 달라지고, 호출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시간도 달라진다.
즉,작위 → 행성적 성질 → 금속 → 의식 시간이라는 하나의 의례적 분류 체계가 생기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한 가지 재미있는 문제가 있다.
고전 7행성 중 화성(Mars)이 이 표에서 깔끔하게 빠져 있다.
Mathers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며 Earl의 금속이 어쩌면 철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남겼고,
Earl을 화성으로 분류하거나, 사용하기도 한다.
게티아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돈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필사본마다 차이도 있고, 누락도 있고, 후대 편집자의 보정도 있다.
5. 그렇다면 게티아 악마의 ‘원소’는?
게티아 존재/악마 별 원소. 이것도 꽤 중요한 부분이다.
인터넷을 보면 아스모데우스 = 불, 레비아탄 = 물, 아스타로트 = 흙 - 과 같은 식으로 아주 정교한 원소표가 돌아다닌다.
그런데 Ars Goetia 원문에는 72명의 영 모두에게 불·물·공기·흙을 하나씩 체계적으로 배정한 표가 없다.
방위에 대한 언급은 일부 존재하지만 그것조차 전승 과정에서 빠지거나 불완전해진 부분이 있다.
술자 Peterson도 각 영을 어느 방향에서 호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Lemegeton 계열에서 상당 부분 누락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원소 대응 상당수는 방위, 행성, 황도대, 골든던, Agrippa, 후대 데모놀라트리 체계 등을 조합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현대의 대응표들도 서로 결과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자료를 볼 때는 “원전에 직접 적혀 있는 대응”과 “후대 오컬티스트가 재구성한 대응” 을 구분해 보는 편이 좋다.
6. 그럼 King은 타천사인가?
가끔 왕으로 칭해지는 존재나 특정 존재가 타천사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King = 타천사라고 바로 연결하면 안 된다.
King은 어디까지나 게티아에서 사용하는 작위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게티아 안에는 일부 영들의 과거 천사 계급을 직접 언급하는 구절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Duke인 Agares는 과거 Virtues의 계급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King Paimon은 Dominions의 계급이었다고 기록되며, 그의 군단 가운데 일부가 Angels와 Potentates에 속한다고 설명된다.
King Beleth 역시 Powers의 계급으로 기록된다.
Marquis Forneus의 군단 일부는 Thrones와 Angels에 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Duke Astaroth는 영들이 어떻게 타락했는지와 자신의 타락 이유를 이야기해 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즉 게티아에는 분명히 타천사 전승의 흔적이 있다.
하지만 King = 타천사가 아니라,
일부 게티아 영들이 과거 천사 계급과 연결되어 있다는 전승이 별도로 존재한다 - 가 더 정확하다.
오히려 Agares처럼 Duke인데 Virtues 출신이라고 기록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Goetic Rank와 과거의 Angelic Order는 서로 다른 분류라고 봐야 한다.

7. 게티아 ‘왕’의 두 종류.
이것도 게티아를 처음 보면 상당히 헷갈리는 부분이다.
태양으로 칭해지는 Bael, Paimon, Beleth, Asmoday, Belial 같은 King 등급의 영들이 있는 한편,
게티아의 의례 구조에는 다시 Amaymon, Corson, Zimimay/Ziminar, Goap 이라는 Four Great Kings, 즉 네 방위를 지배하는 대왕들이 등장한다.
원문에서는 72명의 영들이 이 네 왕의 권세 아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Goetic Rank로서의 King과 방위 전체를 통솔하는 Four Great Kings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
아스모데이는 King이지만 동시에 Amaymon의 권세 아래에서 가장 우두머리에 가까운 존재라고 묘사된다.
이런 부분을 보면 게티아의 구조는 1위 → 2위 → 3위 → 4위 형태가 아니라, 방위 / 상위 통치자 / 작위 / 군단 / 개별 기능이 겹쳐 있는 봉건적 네트워크 에 훨씬 가깝다.

8. 게티아 목록을 보는 방법
그래서 게티아 목록을 볼 때는 이렇게 읽으면 편하다
게티아는 처음부터 누군가가 72명의 악마를 깔끔하게 설계해서 만든 도감이 아니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영 목록, 솔로몬 전승, 기독교적 천사론, 당시의 귀족 계급, 행성 마법과 금속 대응, 여러 필사본이 수백 년에 걸쳐 겹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왕이고,
어떤 곳에서는 공작이며,
옛 자료와 새 자료의 번호가 다르고,
후대에 원소와 황도대까지 다시 붙는다.
그리고 바로 그 복잡함 때문에 게티아가 재밌다.
72명의 악마가 일렬로 줄 서 있는 명단이라기보다, 여러 시대의 마법 전승이 겹쳐진 거대한 계보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관련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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