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ore & Archive

현대 오컬트/LHP에서의 세트.

by Riddley 2026. 6. 21.

외국 좌도맨들은 세트를 어떻게 읽었나

Temple of Set, Xeper, Sekhem Apep, 그리고 현대 좌도의 세트

세트 이야기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고대 이집트 전승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지점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세트는 현대 서구 오컬트, 특히 좌도 계열에서도 꽤 강하게 재해석된 신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세트 신앙, 현대 케메틱 신앙, 그리고 서구 좌도 오컬트에서 말하는 Setianism은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 전승에서 세트는 사막, 폭풍, 혼돈, 이방, 경계, 왕권, 전투성, 아펩을 찌르는 수호자 같은 복잡한 층을 가진 신격입니다.

 

그런데 현대 좌도 계열로 넘어오면 세트는 단순한 “이집트 신”이라기보다,
분리된 의식, 자기신격화, 기존 질서에 흡수되지 않는 자아, 스스로 되어가는 힘의 상징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Temple of Set입니다.

1. Temple of Set: 세트를 ‘자기신격화’의 신으로 읽은 사람들

Temple of Set은 1975년에 등장한 현대 서구 오컬트 단체입니다.

대충 말하면 Church of Satan 쪽에서 갈라져 나온 계열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사탄교에서 이집트 세트로 갈아탔다” 정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트와 LHP 현대 좌도 오컬트

Temple of Set 쪽에서 세트는 단순한 악마나 반항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트를 “고립된 자기의식”, “개별적 존재”, “자기 자신으로 되어가는 힘”과 연결해서 봅니다.

 

여기서 핵심 단어가 바로 Xeper입니다.

Xeper는 대충 “되어감”, “스스로 존재하게 됨”, “자기 자신으로 현현함”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세트 작업은
“신에게 복종한다”
“우주와 하나가 된다”
“자아를 녹인다”

 

이런 방향이 아니라,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으로 되어가는가?”
“나는 무엇을 통해 나 자신을 신격화하는가?”
이쪽에 가깝습니다.

 

이건 되게 좌도스럽습니다.

우주와 합일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의식의 경계를 선명하게 세우는 쪽.

 

신에게 구원받는 게 아니라,
내 의식과 의지와 선택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는 쪽.

 

그래서 Temple of Set의 세트는 고대 신격 그 자체라기보다,

현대 오컬트의 좌도적 인간관과 결합한 세트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2. Xeper: “나는 되어간다”

Xeper라는 단어가 이쪽에서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세트와 꽤 잘 맞습니다.

 

세트는 경계의 신입니다.

사막과 경작지의 경계.
질서와 혼돈의 경계.
중심과 외부의 경계.
문명과 이방의 경계.

 

그리고 경계에 선 존재는 늘 질문을 받습니다.

너는 어디에 속하는가?
너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
너는 무엇으로 변할 것인가?
너는 누구의 질서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네 질서를 만들 것인가?

 

Temple of Set식으로 읽으면 세트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됩니다.

“너는 무엇이 될 것인가?”

아, 이거 진짜 세트답습니다.

 

세트는 사람을 안락하게 품어주는 느낌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 질서에서 떼어내고, 바깥으로 밀어내고,

사막 한가운데 세워놓고 묻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

이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쪽의 세트는 단순히 혼돈의 신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서는 힘에 가깝습니다.

 

3. Black Magic: 악해서 검은 게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마법

Temple of Set 쪽에서 말하는 Black Magic도 일반적인 공포영화식 이미지와는 다릅니다.

여기서 Black Magic은 “악한 짓을 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자기 의지, 자기 목적, 자기 변화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흔히 우도 쪽에서는
“신의 뜻대로”
“우주의 뜻대로”
“더 큰 질서에 맡긴다”
이런 방향으로 가잖아요.

 

반대로 이쪽에서는
“내 의지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변화시키려 하는가?”
“그 결과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
를 봅니다.

 

이게 진짜 중요한 차이입니다.

좌도는 멋있어 보인다고 그냥 들이받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책임이 더 큽니다.

 

내가 원했다.
내가 선택했다.
내가 행했다.
그러므로 내가 결과도 본다.

 

이 감각이 없으면 좌도는 그냥 중2병이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진짜 좌도맨들은 생각보다 이상하게 엄격합니다.
막 “아무거나 해도 됨, 나는 어둠의 마법사임” 이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기록, 자기검열, 윤리, 책임, 정신적 안정성, 자기 통제가 계속 나옵니다.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겉으로는 어둠, 세트, 사탄, 블랙 매직 이런 말을 쓰는데, 막상 안쪽으로 들어가면
“네가 네 의지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냐?”
“네가 진짜 네 자신을 만들고 있냐?”
“너 그냥 충동에 끌려다니는 거 아니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진짜 빡셉니다.

4. 아펩: 고대 전승에서는 베어야 할 혼돈, 현대 좌도에서는 들어가보는 어둠

고대 이집트 전승에서 아펩은 라의 태양선을 위협하는 거대한 혼돈의 뱀입니다.

세트는 그 태양선 앞에서 아펩을 찌르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고대 전승의 구도에서는 대체로

라의 항해
태양선
밤의 두아트
아펩의 위협
세트의 방어

이런 구조가 됩니다.

 

여기서 아펩은 질서를 삼키는 혼돈입니다.

 

그런데 현대 좌도 계열로 가면 아펩을 단순히 “퇴치해야 하는 악”으로만 보지 않는 흐름도 나옵니다.

특히 Typhonian, Vampyre, Nightside, Tunnels of Set 같은 계열에서는 아펩과 어둠의 영역을 하나의 금기된 탐구 공간처럼 다루기도 합니다.

 

이게 전통 케메틱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위험하거나 불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전승에서 아펩은 공물을 바치고 친해질 대상이라기보다,

매일 밤 찢고 묶고 베어야 하는 혼돈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 좌도맨들은 여기서 또 이상한 짓을 합니다.

“그래서 그 혼돈의 뱃속에는 뭐가 있는데?”
“금지된 어둠 안에는 어떤 힘이 있는데?”
“아펩의 힘을 마주하면 의식은 어떻게 변하는데?”

이러고 들어갑니다.

 

근데 궁금하긴 하네요. 그런데 굳이 찍먹하기는 싫고요.

5. Sekhem Apep: 아펩의 힘을 제목으로 건 현대 그리모어

여기서 나오는 책 중 하나가 Michael W. Ford의 Sekhem Apep: Typhonian Vampyre Magick입니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 종교 안내서라기보다, 현대 좌도·루시페리안·Typhonian·Vampyre Magick 계열의 그리모어에 가깝습니다.

 

즉, 이걸 보고
“아 고대 이집트인들이 아펩을 이렇게 숭배했구나”
라고 읽으면 안 됩니다.

 

그게 아니라, 현대 좌도 오컬티스트가 아펩, Typhonian Thelema, Vampyre Magick, Black Order of the Dragon 같은 요소를 엮어서 만든 어둠의 작업 체계로 보는 게 맞습니다.

 

여기서 분위기는 훨씬 더 어둡습니다.

Temple of Set이
“의식의 독립성, 자기신격화, Xeper, 자기변형”
쪽이라면,

 

Sekhem Apep 쪽은
“아펩, 나이트사이드, 에너지, 흡혈적 상징, 어둠의 두아트, Typhonian 계열”
쪽으로 훨씬 내려갑니다.

 

말하자면 Temple of Set은 검은 연구소 느낌이고,
Sekhem Apep은 지하 금서고 느낌입니다.

둘 다 좌도인데 결이 다릅니다.

 

Temple of Set은 “되어가라.”
Sekhem Apep은 “그럼 네가 금지된 어둠까지 볼 수 있냐?”
이런 느낌입니다.

6. Typhonian 계열: 케네스 그랜트의 이상한 밤길

Sekhem Apep을 이해하려면 Kenneth Grant 쪽도 살짝 봐야 합니다.

Kenneth Grant는 Thelema, Crowley, Austin Osman Spare, Tantra, Lovecraftian imagery, Typhonian current 같은 걸 이상하게 뒤섞은 인물입니다.

 

쉽게 말하면 정통 교과서형 오컬티스트라기보다,
꿈, 어둠, 성마법, 타나트라, 외계적 지성, 러브크래프트식 공포, 고대 신들의 그림자 같은 걸 전부 연결해서 하나의 밤길로 만들어버린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Typhonian 계열은 읽다 보면 좀 정신이 나갑니다.

이게 신화인가?
상징인가?
마법체계인가?
문학인가?
망상인가?
의식 실험인가?

경계가 흐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경계 흐림 때문에 현대 좌도 쪽에서는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왜냐하면 좌도는 원래 금기, 경계, 바깥, 그림자, 비정상성, 개별 의식의 돌파 같은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Typhonian 계열은 이 모든 걸 “밤의 통로”처럼 엮어버립니다.

 

7. 세트와 아펩을 현대 좌도에서 같이 읽을 때

여기서 재미있는 반전이 있습니다.

고대 전승에서는 세트가 아펩을 찌릅니다.

즉, 세트는 혼돈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현대 좌도에서는 어떤 흐름이 생기냐면,
세트를 통해 자기 의식을 세우고,
그 의식을 가지고 아펩적 어둠을 마주하려는 식의 해석이 나옵니다.

이게 위험하지만 재밌는 지점입니다.

 

아펩은 그냥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아펩은 삼키는 혼돈입니다.
흐릿하게 만들고, 풀어버리고, 녹여버리고, 태양선을 멈추게 하려는 힘입니다.

그런데 세트적 의식이 있으면 그 혼돈을 그냥 숭배하거나 거기에 잡아먹히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베고, 통과하고, 때로는 그 안에서 힘의 구조를 읽어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꽤 좌도스럽고

탐구할 지점이 보입니다.

 

어둠을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둠에 삼켜지지도 않는다.

혼돈을 본다.
하지만 혼돈이 나를 대신 말하게 두지는 않는다.

 

아펩을 안다.

하지만 태양선을 잃지는 않는다.

 

이런 느낌입니다.

8. 그래서 이 글을 왜 따로 써야 하냐면

세트 관련 글에서 이 현대 좌도 계열까지 한 번에 넣으면 글이 터집니다.

 

고대 이집트 세트.
오시리스 신화의 세트.
라의 태양선을 지키는 세트.
아펩과 싸우는 세트.
사막과 폭풍의 세트.
현대 케메틱 세트.
Temple of Set의 세트.
Xeper의 세트.
Typhonian의 세트.
Sekhem Apep의 아펩.
Vampyre Magick의 아펩.
Kenneth Grant의 밤길.

 

이걸 한 글에 넣으면 독자도 터지고 작성자도 터집니다.

그래서 분리하는 게 맞습니다.

 

앞 글에서는 세트를 고대 전승과 개인 작업 중심으로 다루고,
이 글에서는 현대 좌도 오컬트에서 세트와 아펩이 어떻게 재해석되었는지를 따로 다루는 게 좋습니다.

 

고대 전승에서 세트는 아펩을 찌르는 자입니다.

 

Temple of Set에서 세트는 의식의 독립성과 자기변형의 상징이 됩니다.


Sekhem Apep 계열에서는 아펩적 어둠, 나이트사이드, 흡혈적 상징이 현대 좌도 그리모어 안으로 들어옵니다.

즉, 같은 이름이 나와도 층위가 다릅니다.

 

고대 신화.
현대 종교운동.
좌도 철학.
의식 실험.
그리모어 문학.
개인 작업.

이걸 섞으면 안 됩니다.

 

근데 나눠서 보면?

진짜 재밌습니다.

 

세트는 사막에서 사람을 벗겨놓는 신이고,
Temple of Set의 세트는 “너 자신으로 되어가라”고 말하는 신이며,
Typhonian과 Sekhem Apep 쪽의 어둠은 “그럼 네가 어디까지 볼 수 있냐”고 묻는 밤의 통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세트는 혼돈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 흐름 안에서는, 세트는 혼돈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의식의 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아펩은 그 칼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밤의 뱀입니다.

그러니 이쪽 작업을 읽을 때는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빨려 들어가면 안 됩니다.

 

기록할 것.
구분할 것.
전승과 현대 재해석을 섞지 말 것.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태양선을 잃지 말 것.

 

끝.